‘암살자(들)’ 역사왜곡 논란 확산…영화적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박정희 배후설 암시 논란
기념단체 “상영 중단” 요구, 제작진 “특정 인물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 반박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극장 밖으로 확산하고 있다.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설과 극적 설정이 '영화적 상상력'의 범위인지 아니면 '역사 왜곡'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과 관련 기념단체로 번졌고 제작진에 대한 고발까지 이뤄졌다. 여기에 영화 제작에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는 주장까지 등장하면서 제작사가 추가 해명에 나섰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서 출발한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은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총을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문세광은 이후 재판을 거쳐 사형이 확정됐다.
영화는 이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의 결론 이면에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을 이야기 속에 배치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쟁점은 '또 다른 암살자가 있었는가'
제목부터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들)》이다.
영화 속 일부 인물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가설로 제기한다. 하지만 영화가 이를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명시하거나 특정 인물을 배후라고 확정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판하는 측에서는 관객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권력기관이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영화 제목이 복수형이라는 점까지 언급하며 문세광 이외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월 29일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박정희기념재단 이어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도 반발
논란은 관련 기념단체로도 확산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제작사의 공식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한 데 이어,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 역시 29일 영화의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는 당시 사건에 관한 수사와 재판 기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보부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건을 기획했을 가능성을 다루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도 영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 의원들은 상영 중단을 요구하거나 감독 등 관계자의 국정감사 출석 필요성까지 주장했다.
제작진 "역사적 결론을 바꾸려 만든 영화 아니다"
제작진의 입장은 다르다.
제작진은 《암살자(들)》이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다양한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작품 속에서 제시되는 가설과 극적 설정 역시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왜곡하려는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이 아니며 특정한 정치적 목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제작진의 논리는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와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 극영화'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자본설까지 등장…제작사 "전혀 사실 아니다"
역사 논쟁에 이어 제작 자본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와 중국계 자본의 관계를 거론하며 중국 자본과의 연관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29일 별도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중국 자본이 영화 제작에 유입됐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제작사는 《암살자(들)》이 국내 제작진과 창작자들의 주도로 국내 자본을 통해 독립적으로 기획·제작됐으며, 영화에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된 제작사 입장을 기준으로 중국 자본 개입 주장을 사실로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역사왜곡인가, 창작의 자유인가
《암살자(들)》 논란의 핵심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을 추가하는 것은 흔한 영화적 기법이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정치·사회적 평가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대사의 사건이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영화라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객이 극적 설정과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면 확인되지 않은 가설이 실제 역사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제작진은 영화가 특정 배후를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했더라도 가상의 인물과 상황, 가설을 결합할 수 있는 극영화의 창작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논란 속에서도 흥행…스크린 밖 논쟁 계속될 듯
논란에도 영화는 개봉 직후 흥행세를 보였다.
《암살자(들)》은 지난 23일 개봉한 뒤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다만 28일에는 약 6만7천 명을 동원하면서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이어 2위로 내려왔다.
온라인에서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구독자 417만 명 규모의 영화 유튜브 채널 '지무비'가 약 179만 회 조회된 《암살자(들)》 관련 영상을 삭제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다만 해당 채널은 영상 삭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아 이를 영화 논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영화의 작품성을 넘어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경계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제작자는 실제 사건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관객에게 어느 정도까지 명확하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영화 속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것인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허구적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결국 관객의 판단 영역에 남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1974년 사건에 관한 수사·재판상의 결론과 영화 《암살자(들)》이 제시하는 극적 가설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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