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해서웨이 vs 한소희…11년 만에 다시 태어난 ‘인턴’의 여성 CEO
2015년 영화 《인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줄스 오스틴’을 쉽게 잊기 어렵다.
온라인 패션 회사를 단기간에 성장시킨 젊은 CEO. 사무실을 자전거로 누빌 정도로 바쁘고, 고객에게 배송되는 상품의 포장 상태까지 직접 확인하는 완벽주의자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CEO와 아내, 엄마라는 여러 역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2026년, 한국판 《인턴》이 등장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던 시니어 인턴 벤의 자리는 최민식이 맡았고, 앤 해서웨이가 연기했던 젊은 여성 CEO의 자리는 한소희가 이어받았다.
그런데 한소희의 선택은 의외였다.
앤 해서웨이를 따라가는 대신, 오히려 앤 해서웨이를 잊으려고 했다.
앤 해서웨이의 ‘줄스’, 한소희의 ‘선우’
원작과 한국판의 기본 설정은 상당히 닮아 있다.
원작의 줄스 오스틴은 빠르게 성장한 온라인 패션 회사의 창업자이고, 한국판의 선우 역시 창업 3년 만에 패션업계의 다크호스로 회사를 키워낸 젊은 CEO다.
한국판에서 선우가 이끄는 회사는 ‘우투투(WOO22)’. 선우는 3년 만에 연 매출 100억원 규모로 회사를 성장시킨 인물로 설정됐다. 여기에 37년 직장 경력을 가진 시니어 인턴 ‘기호’가 입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조만 놓고 보면 2015년 영화와 비슷하다.
하지만 두 CEO를 연기하는 배우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앤 해서웨이의 줄스가 빠른 말투와 풍부한 표정, 밝은 에너지를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창업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한소희가 연기하는 선우는 보다 단단하고 현실적인 한국의 젊은 CEO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배우가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판 제작진은 11년 동안 달라진 직장 문화와 세대 관계를 영화에 반영했다. 김도영 감독은 원작보다 기호와 선우를 현실적인 인물로 만들고, 오늘날 직장인이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까지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한소희가 앤 해서웨이를 ‘잊으려’ 했던 이유
세계적으로 알려진 캐릭터를 다시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소희 역시 이를 인정했다.
그는 제작보고회에서 원작이 워낙 사랑받은 작품인 만큼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촬영 과정에서는 오히려 원작을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앤 해서웨이의 연기를 계속 의식하면 자신도 모르게 말투나 행동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한소희는 자신의 실제 성격과 주변 직장인·스타트업 종사자들의 모습을 선우에게 가져왔다. CEO가 느끼는 책임과 개인적인 욕망 사이의 균형을 표현하는 데 주변 사람들의 경험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소희가 선택한 방법은 ‘한국의 앤 해서웨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소희의 선우’를 만드는 것이었다.
패션에서도 다른 두 CEO
《인턴》에서 패션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두 작품 모두 패션 관련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CEO의 옷은 그 사람의 성격과 회사에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앤 해서웨이의 줄스는 세련되면서도 활동적인 스타일을 보여줬다. 젊은 창업가 특유의 자유로움과 패션업계 CEO라는 전문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스타일이었다.
한소희 역시 선우의 의상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다만 유행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젊은 CEO의 카리스마와 실용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선택했고, 시간이 지나도 어색하지 않을 스타일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패션 스타트업 CEO지만 두 배우의 이미지가 다른 만큼 화면에서 만들어지는 분위기도 달라진다.
앤 해서웨이가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CEO의 카리스마 사이를 오갔다면, 한소희는 자신이 기존 작품에서 보여준 강렬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선우라는 인물에 새롭게 녹여낸다.
2015년 미국 직장과 2026년 한국 직장의 차이
두 영화를 비교할 때 배우만큼 중요한 것이 시대다.
원작이 개봉한 것은 2015년이다.
당시 영화는 젊은 여성 창업자와 70대 남성 인턴이라는 뒤집힌 관계를 통해 세대 간의 차이와 우정을 보여줬다.
한국판은 2026년의 직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AI가 일상적인 업무 도구가 됐고 새로운 직장 용어와 문화가 등장했다. 한국판 제작진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면서 세대 갈등과 직장인의 불안, 조직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 같은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담으려 했다.
원작을 그대로 한국 배우들이 다시 연기한 작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판은 기본적인 이야기의 뼈대는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감정선과 클라이맥스, 결말에도 변화를 줬다.
앤 해서웨이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한소희
한소희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비교다.
앤 해서웨이는 원작에서 줄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성공한 여성 CEO의 자신감뿐 아니라 불안과 죄책감, 가족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보여줬다.
한국에서도 원작 《인턴》은 약 36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만큼 줄스와 벤의 모습이 국내 관객에게도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판 제작진과 배우들도 이 같은 부담을 잘 알고 있었다.
최민식 역시 원작 배우들과의 비교 자체를 의식하기보다 한국판의 인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고, 한소희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선우를 만들어냈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따라서 한소희의 선우를 보는 흥미로운 방법은 ‘앤 해서웨이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찾는 것보다 같은 출발점에서 얼마나 다른 CEO가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을지 모른다.
줄스에서 선우로…11년이 만든 변화
2015년의 줄스 오스틴과 2026년의 선우.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만든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는 젊은 여성 CEO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험 많은 시니어 인턴을 만나면서 자신이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감정과 직장 문화, 세대 관계는 다르다.
앤 해서웨이가 2015년 미국 스타트업의 줄스를 만들었다면 한소희는 2026년 한국 직장의 선우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판 《인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한소희가 앤 해서웨이의 줄스를 얼마나 잘 재현했을까?”가 아니라, “11년이 지난 지금 줄스라는 인물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한국판 《인턴》은 바로 그 질문에 ‘선우’라는 새로운 인물로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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